일을 못해서 업무설계가 필요한 게 아니다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토록 고요하고 침착한 분위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 한마디 없이 열중하고 있다니. 평생 기획과 개발 쪽에서 일해온 나는 조용하더라도 숨 막히는 느낌은 싫어하는데, 딱 이곳이 그랬다.
‘역시 법과 관련된 사람들은 차분한 환경에서 일하는구나.’
오늘은 고객인 변호사님 개인 사무실에 바짝 붙어 앉아 관찰을 할 예정이었다.
사실 보통은 온라인 미팅이나 원격으로 지켜보며 파악해도 된다. 그런데 이 변호사님만큼은 꼭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내가 아는 수준에서 이 변호사님은 일을 잘하는 능력자이고, 판단력과 상황관리 능력, 문제해결력까지 탁월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내 눈에 부족한 게 얼마나 보일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질문을 많이 하고 싶었다.
“변호사님, 제가 질문을 많이 할 거예요. 정말 귀찮을 거예요. 짜증 날 수도 있어요. 짜증 내셔도 계속 질문할 거예요.”
이미 각오하시라고 여러 번 전한 터라 걱정하지 않고 의자를 당겨서 곁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변호사님이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저 운동 좀 하겠습니다. 루틴이라서요.”
스쿼트를 몇 갠지 모르게 하시더니, 숨차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커피 가져다드릴게요. 뭐 좋아하세요?”
“아닙니다. 제 커피는 제가.”
변호사님은 모니터 3개가 놓인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 온갖 창을 다 열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할 일을 리뷰하고, 할 일 목록을 정리해서 우측 상단에 띄워두고, AI 창들을 열어두고 업무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AI 창은 그냥 열어둔 게 아니었다.
사례를 분석하는 GPTs를 직접 만들어 두고 쓰고 계셨다.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정리해서 넣고, 그걸로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까지가 한 세트였다.
구글 드라이브와 지메일도 전부 연동해 두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들을 그때그때 통합해서 정리하고, 바로 업무에 가져다 썼다.
오전 내내 읽거나 쓰거나 체크하는,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한다. 오후에는 고객들과 소통하는 일이나 법원에 나가는 일들로 맞춰 일한다고 했다.
최소 2시간 이상 집중할 수 있어야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변호사님이 하루를 계획하는 방식은 자신의 시간을 최대한 체계적으로 쓰기 위한 설계였다.
숨 막힐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변호사님을 보고 있자니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미안했다. 하지만 나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이건 왜 여기에 저장하세요?”
“할 일 목록을 혼자만 보세요?”
“고객과 소통은 메일이 주요 경로예요?”
“정기고객에게 청구는 어떻게 하세요?”
나의 질문은 밖에 앉아 있는 다른 변호사님과 사무장님에게도 이어졌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일을 지켜보고 있자니, 지루하…기는커녕 너무 재밌고 신났다.
저렇게나 다양한 글을 하루에 수두룩하게 읽고 쓰는 것을 보고 놀라면서, 완벽한 문과 스타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변호사 하면 잘 맞을 것 같아요. 너무 재밌어 보여요!”
나의 망언에도 변호사님은 동의했다.
“맞아요. 다양한 일도 사람도 많고 공부도 계속하니까 재밌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복 받은 일이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그래서 더 욕심이 나서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고생하셨어요, 변호사님. 역시 변호사님은 일잘러이십니다. 이렇게 AI를 자기 전문성에 제대로 활용하면서 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분들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업무방식이나 체계를 보완하고 자동화할 것들이 많이 보여요.”
사실 업무를 설계하고 체계화해야 하는 사람들은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설계하면 기하급수적으로 성과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잘러 변호사님은 자신이 하는 일을 중심으로 많은 정보와 판단이 모이는 구조가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 업무와 정보가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소통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하나씩 물어볼수록 전문가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행정업무도 보이기 시작했다.
지원하는 분들이 단순업무를 대신 맡아주는 것도 답이 아니다. 단순업무는 없애거나 자동화하고, 오히려 복잡하고 중요하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성과 차이가 크지 않은 일을 맡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 일잘러 전문가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만 되면 이 사무실에는 최정우 변호사가 열 명 있는 것과 같아진다.
네, 홍보글 맞습니다. 기업법무·지식재산 전문 최정우 변호사님. 스쿼트도 하십니다. 강추.
